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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

키아누 리브스 (Keanu Reeves) - 파도치는 인생사

by 땡이억이 2022. 1. 2.

헐리웃 배우 중 가장 극과 극을 경험해 본 배우가 누굴까요? 아마 키아누 리브스도 리스트에 단골손님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늘은 험난했던 그의 인생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메트릭스 레볼루션 속 키아누 리브스
매트릭스 레볼루션

 

키아누 리브스의 성장기

키아누 찰스 리브스(Keanu Charles Reeves)는 1964년 9월 2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지질학자였던 아버지 사뮤엘 리브스와 의상 디자이너로 일했던 어머니 패트리샤 본드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납니다. 국적은 캐나다이며 아버지는 여동생이 태어날 때 즈음 집을 나갔고 3살 때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중국계 하와이인이었던 친할머니의 영향으로 하와이어로 '산에서 부는 시원한 바람'이란 뜻의 키아누로 이름이 지어지고 중국식 문화 속에서 살았으며 그래서인지 불교의 독실한 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 동생과 함께 호주와 미국을 돌아다니며 살다가 7살이 되던 해에 캐나다 토론토에 정착하였고, 미모의 어머니는 3번의 재혼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각각 재혼해서 딸을 두어 아래로 이복 여동생 둘이 더 있습니다.

배우, 성우, 음악가, 만화가, 프로듀서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며, 학창 시절에는 아이스하키 골리 출신이었고 실력도 국가대표급이었다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불운한 본인의 가정사와의 동질감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빠져서 살았고 연극배우와 아이스하키 선수로의 진로를 고민하던 중 운동 중에 부상을 당하게 되고 15살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머큐시오 역할로 연극 무대에 서며 연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배우로의 첫 발

1984년 캐나다에서 TV 프로그램으로 데뷔를 했고, 1986년 롭 로우와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아이스하키 영화 영블러드에서 아이스하키 골키퍼 역할을 맡아 조연으로 할리우드 첫 발을 디딥니다. 그전부터 여러 오디션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낙방을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이력서에 적어 넣은 아이스하키 경력이 결정적인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을 했다고 합니다.

 

이후 패트릭 스웨이지와는 폭풍 속으로 에서 다시 한번 인연을 이어갑니다. 이 폭풍 속으로(Point Break)란 제목은 후에 마블의 어벤저스에서 스타크가 토르를 부르는 별명으로 불리게 됩니다.

첫 주연작은 1989년 엑설런트 어드벤처였고 어리숙하고 코믹스러운 이미지로 인기를 끌어 속편까지 제작이 되고 2020년에 3편까지 제작이 됩니다.

 

 

키아누 리브스의 시련기 (feat. 리버 피닉스, 조니 뎁)

1991년 리버 피닉스와 함께한 아이다호에서 인지도를 크게 올리며 연기력도 인정받게 되는데 먼저 대본을 받아본 키아누 리브스가 절친인 리버 피닉스와 함께 하고 싶어 먼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 가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때 그에게 큰 시련이 찾아오는데 어느 날 아침 TV 뉴스를 보던 중 리버 피닉스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당시 리버 피닉스와 함께 있던 그의 동생인 호아킨 피닉스(조커에 나온 그 호아킨 피닉스 맞습니다.)가 신고해 구조대가 왔지만 응급조치 중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가 죽은 곳이 L.A의 바이퍼 룸이란 클럽이었는데 약쟁이들이 많이 다니던 클럽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리버 피닉스 본인도 1990년부터 헤로인과 코카인 등 각종 마약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그날도 그곳에 공연차(리버 피닉스는 연기보다 음악활동에 더 열정적이었다고 합니다.) 갔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의 사장 중 한 명이 바로 조니 뎁이었고 사건 후에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또 비슷한 시기 여동생이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게 됩니다.

 

 

스피드와 산드라 블록 그리고 침체기

1994년에 개봉한 스피드로 전 세계적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되는데 몇 년 전 엘런 쇼에 출연한 산드라 블록이 당시 키아누 리브스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걸 밝혔고, 뒤에 키아누 리브스도 그 프로에 나와 본인도 산드라 블록을 좋아했었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이후 개봉한 코드명 J와 체인 리액션이 연달에 흥행에 실패하며 침체기를 겪었고, 140억 원의 몸값으로 스피드 2의 주인공 역으로 캐스팅되었지만 대본을 읽어본 후 거절을 하였고 그 후에 폭스사와 틀어져 오랫동안 폭스사가 제작하는 작품에는 출연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토론토로 돌아가 자신을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한 햄릿의 연극 무대에 섰으며 자신의 밴드 Dogstar 투어를 다니게 됩니다. 키아누는 1991년에 결성된 Dogstar라는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였으며 본 조비와 데이비드 보위 콘서트의 오프닝도 맡고, 글래스톤베리 무대에 선적도 있다고 합니다. 2002년에 해체하였으나 멤버들과는 지금도 가끔 만나 연주를 한다고 합니다.

1997년에는 데블스 에드버킷에 알 파치노와 출연하며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알 파치노의 높은 출연료를 맞추기 위해 본인의 출연료에서 몇 십억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키아누 리브스의 인생작

1999년에는 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인생작이 개봉을 합니다. 매트릭스가 대박이 터지면서 매트릭스 1편에서 5,600만 달러(출연료 1,000만 달러+러닝 개런티 10%), 2편 메트릭스 리로디드에서 1억 2600만 달러(출연료 1,500만 달러+러닝 개런티 15%), 3편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 8,000만 달러(출연료 1,500만 달러+러닝 개런티 15%)를 받아 시리즈 수입 2억 6200만 달러로 시리즈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배우 순위 2위에 랭크됩니다. 특히나 2편인 매트릭스 리로디드의 수입 1억 2600만 달러는 단일 영화 기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최고라고 합니다. 더 대단한 건 그중 600억 원가량은 제작팀에게 나누어 주었고, 스턴트맨들에게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한 대씩 선물해 주었다고 합니다.

 

노숙자 생활

최고의 전성기였던 이 시기에 여자 친구인 제니퍼 사임과의 사이에서 여덟 달 만에 태어난 아이가 사망한 채로 세상 밖에 나오게 되고 키아누 리브스의 암흑기의 시초가 됩니다. 충격으로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몇 달뒤 그녀는 우울증으로 운전 중 다른 자동차로 돌진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그녀의 시신은 사산된 아이(Ava Archer Reeves)와 함께 묻혔다고 합니다. 이후 키아누는 스스로를 불행의 아이콘으로 생각하며 타인과의 거리를 두고 고립된 생활을 하기 시작합니다. 국내에서 유명한 노숙자 생활을 하는 사진도 이러한 배경에서 찍히게 된 듯합니다.

 

 

제2의 전성기

그러던 중 2014년 매트릭스 당시 스턴트 겸 스턴트 코디네이터 데이비드 레이치와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영화 존 윅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2017년에는 2편인 존 윅: 리로드가 개봉을 하고 메트릭스의 로렌스 피시번도 출연하며 이 영화로 역대급 액션 영화라는 찬사와 함께 흥행에서도 전작보다 성공하게 됩니다. 2019년에는 존 윅 3가 개봉하는데 역시나 흥행과 평가 모든 면에서 전작을 뛰어넘게 됩니다. 존 윅 시리즈의 1편은 할리우드 기준 작은 규모인 2천만 달러의 예산으로 시작한 액션 영화였지만 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전편의 2배에 가까운 수익을 내며 진기록을 낸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2021년 개봉을 예정으로 존 윅 4 제작이 확정되었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촬영 지연 때문에 2022년 5월 27일 개봉 예정이고, 존 윅 5도 제작 확정이라고 합니다.

여러 자선단체에서 자선활동이나 기부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재단도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오토바이를 너무 좋아해 오토바이 마니아를 넘어 자신이 직접 아치(Arch) 모터사이클이라는 오토바이 제조사를 설립하였고 가격대는 8000만 원 이상으로 매우 비싸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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